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문단 편집) === [[술라의 내전]] 시기 === 크라수스는 병력을 끌어모은 뒤 마리우스파를 적대하는 또다른 인물인 [[메텔루스 피우스]]가 군대를 모으고 있던 아프리카로 건너갔다. 그러나 알려지지 않은 사유로 그와 반목한 뒤 기원전 83년 초 이탈리아에 상륙한 술라에게 가세했다. 이때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처음으로 대면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술라가 크라수스보다 어린 폼페이우스를 더욱 총애하는 모습을 보이자, 크라수스의 마음 속에 폼페이우스에 대한 경쟁 의식이 싹틔웠다고 한다. 그렇지만 두 젊은 사령관은 함께 행동했다. 기원전 82년, 그들은 움브리아로 진군해 스폴레티우스에서 법무관 가이우스 카리나가 이끄는 마리우스파 군대를 격파하고 포위했으며, 술라와 대치하던 [[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기원전 85년 집정관)|그나이우스 파피리우스 카르보]]가 급파한 부대 역시 격파했다. 하지만 카리나는 악천후를 이용해 포위망을 빠져나왔다. 이후 두 장군은 프라이네스테에서 [[소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포위한 술라에 가세했다. 기원전 82년 가을, 삼니움 족 지도자이며 마리우스파와 동맹을 맺었던 텔레시누스는 프라이네스테를 구원하려는 계획이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자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그는 로마와 자신들을 가로막은 군대가 없다는 점을 간파하고, 한밤중에 진지를 떠나 로마로 질주하여 술라가 미처 저지할 새도 없이 로마를 공략하기로 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술라는 폼페이우스 등에게 잔여 병력을 맡겨 프라이네스에 남겨둔 뒤 크라수스와 함께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달려갔다. 이튿날 정오 경에 술라군이 당도하자, 텔레시누스는 곧바로 요격에 나섰다. 이리하여 벌어진 콜리나 성문 전투는 술라가 내전을 단행한 이래 가장 격렬한 전투였다. 술라가 직접 지휘했던 좌익 부대는 삼니움족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되었다. 이에 술라는 프라이네스테로 전령을 보내 그곳 병사들에게 포위를 중단하고 아군을 구원하라고 전하게 했다. 그러나 그가 모르는 사이, 우익 부대를 이끌던 크라수스가 적군을 격파하고 진영을 함락시켰다. 술라는 수 시간이 지나서야 크라수스가 보낸 전령을 통해 자기가 이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 텔레시누스는 부상을 입은 채 전장에 쓰러져 있다가 목이 베어졌고, 수급이 창에 꽂혀 전시되었다. 그 후 크라수스는 술라의 대숙청 명단에 들어간 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브루티움으로 향했다. 그는 이곳에서 수많은 이들을 처단하고 그들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삼았다. 그러나 술라와 협의하지 않고 술라를 지지하던 부자를 숙청 명단에 임의로 포함시키고 그의 재산을 몰수했다가 술라에게 호된 질책을 받고 숙청 대상자 수색을 중단해야 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해 로마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는 이외에도 권력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기도 했고 임대업이나 부동산 같은 여러 가지 사업을 벌여 부를 쌓았다. 전문 노예들로 이루어진 단체를 거느렸으며 전문인력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노예들을 빌려주는 사업을 했고, 설계가 [[영 좋지 못한]] 건물이나 화재로 타버린 건물을 싼 값에 사들여 수리하고 개축하여 되파는 사업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사업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 알려진 [[소방서]]를 매수해서 불끄는 것을 늦추는 사이 불에 탄 집을 싸게 사들인 후 리모델링해 비싸게 팔아 차익을 챙겼다는 일화는 야사로 크라수스가 실제로 그랬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이 기상천외한 수익 창출 방식에 후대 사람들이 크게 감명을 받았는지 이 이야기는 크라수스의 재산 형성 과정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일화가 되었다. 거기다 일화로 소개되는 건 그나마 다행인 수준이고 내용을 깊게 다루지 않는 책에선 아예 그런 방법만으로 큰 돈을 벌었다고 설명하는 경우가 부지기수.[* 어린이용 학습만화인 중 하나인 [[계몽사]]의 '학습만화 세계사'에서는 한술 더 떠서 상대가 거래를 거절하자 불을 안 끄고 가려고 하고, 집주인이 뒤늦게 거래에 응하자 '흥정하는 동안 집이 더 탔다'라며 처음 제시한 돈의 반만 주는 내용도 나온다.] 다만 역사학자들은 그 정도로 악독한 짓을 해서 돈을 벌었다고 보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정치가로 활동하려면 가문과 재산도 중요하지만 여론과 시민들의 지지 역시 필수적이다. 때문에 로마의 정치가들은 시민들에게 성대한 연회와 오락거리를 자주 제공하고, 가난한 시민 계급에게는 빵과 포도주를 무상으로 나눠주기도 했으며, 오히려 이런 데 돈을 쓰지 않는 사람들을 쩨쩨하다고 공개적으로 비웃기까지 했다. 그런데 화재가 난 남의 집 불을 늦게 끄고, 거기다 그 집을 헐값으로 거저 먹는 악독한 짓을 했다면 정계 입문은 커녕 암살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고, 사회적으로 두고두고 뒷담화를 들으면서 매장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즉, 크라수스가 인기가 없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군공이 없고 고리대금업자에 신참이라는 것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그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귀족과 평민 중 어느 쪽이라도 인기가 힘든 포지션이다.] 친구들에게는 [[이자]]를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었는데, 약속한 기한이 지나면 어찌나 크라수스의 빚 독촉이 심한지 친구들이 차라리 이자를 내는 쪽이 마음 편하겠다고 생각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는 고리대금업을 한다는 악평을 얻지 않으면서도, 동료 원로원 의원들에게 금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하지만 로마 제일의 부자임에도 의외로 평소에는 소박한 [[음식]]을 먹었고, 자기 사는 집 외에는 [[별장]]을 지은 적도 없었다고 한다. 2008년 포브스 지가 역사적 인물들 중에 갑부들만 뽑아 그 재산을 현재의 가치로 환산한 순위에서 전체 75명 중 8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여기서 포브스 지가 현재 가치로 환산한 크라수스의 재산은 약 1698억 달러(2022년 달러-원 환율 기준으로 '''203조 7260억 원''').[* 참고로 2016년도 [[대한민국]] 1년 예산이 대략 387조 정도. 아이언맨의 경우 123조 원, 배트맨은 91조 원.]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